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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사역 가이드

예배시간을 '쇼'로 만들지 말 것!

by 음악노트 2020. 4. 16.

2016년 3월 28일, 네이버 뉴스 <종교 섹션>에 올라온 <무대 집회로 바뀐 예배, 하나님과의 교제 막아>라는 제목의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 세미나에서 한일장신대 정장복 교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대 감각만 남고 성스러움이 결여된 예배당, 집회와 구분되지 않는 예배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W. 토저 목사님 역시 자신의 책 <예배인가 쇼인가?, 규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 '춘계신앙수련회'에서 만난 후배들과 여러 교회로 찬양집회를 다녔습니다. 그 때 저희들도 예배에 관한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하면서, 때로는 예배가 '쇼' 같아 지는 것에 대해 나눈 적이 있습니다. '경배와 찬양'이 아니라 '경배와 쇼'라며 조롱 섞인 말들을 하기도 했지요. 

 

경배와 찬양.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교회의 예배 형식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획기적이기도 했습니다. 음악과 관련된 전문 사역자들이 미처 준비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바람처럼 불어닥친 이 흐름으로 인해 교회에서는 전자악기와 과련된 음향장비의 구입도 늘어났습니다. 교회 강대상의 높이도 점차 낮아졌고, 강단의 크기도 보면대 사이즈 정도로 줄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강단 위엔 화려한 조명이 도입이 되었고, 방송실 장비도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더더욱 많은 해외의 찬양곡들이 번역되고, 그 곡들을 부른 팀들의 영향으로 음악의 형식 등도 달라졌습니다. 방송국에서나 쓸 법한 장비들의 도입으로 봉사자들도 점점 '전문가 수준'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회중사이에도 커다란 '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선곡되는 곡들은 기성세대가 점차 따라 갈 수 없을 만큼 빠른 비트와 잘게 쪼개진 박자로 인해 가사를 따라 부르기도 어렵다는 호소가 늘어났습니다. 자연스레(?) 젋은이들과 기성세대들의 예배가 분리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통적으로 부르던 찬송가는 젊은 세대에게 따라부르기 어려운 노래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찬송가도 더 친숙해지도록 편곡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 때에도 전통적인 찬송가에 익숙했던 기성세대에겐 그것이 또 낯설고 어려운-때로는 너무 경박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할 정도로 걱정되는- 걱정 섞인 우려가 나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인도자들도 한 몫을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곡들과 선호하는 음악스타일을 가지고 콘티를 구성하여 그로 인해 회중은 예배드리는 자리에서 외면되는 경우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에선 '경배와 찬양'같은 회중집회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그게 부흥의 비결이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서둘러 이 시스템을 도입하느라, 앞으로 닥치게 될 이러한 일들을 고려해보지 못한 채 강단을 다시 꾸미고 화려한 조명과 좋은 음향시설과 악기를 구입하는 것에 몰두함으로 대세에 합류했습니다. 

 

점차 예배시간 중 찬양을 인도하는 팀에서는 전주도 웅장하고 화려해졌습니다. 중간에 솔로 연주도 하고, 보컬의 솔로로 하며 그 사이 카메라는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클로즈업해서 화면으로 송출하는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덕분에 세대 간에 분리는 가속화 되기도 했고, 세션이나 음향이나 악기가 충분하지 않은 교회나 그곳에서 섬기는 사람들은 뭔가 허전하고 찬양하는데 힘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는 사역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는 거죠) 

 

지금은 더욱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EDM 장비가 도입이 되기도 합니다. 전문장비를 가지고 특정한 효과를 내고, 전문적인 음악적 테크닉을 활용해서-예를 들면, 순환코드만으로 이뤄진 곡의 무한 반복(스캇브래너, 다윗의 장막 같은 팀에서 잘 활용) / 루프를 활용한 특정멜로디의 단순하고 꾸준한 반복 / 텐션이 주는 긴장감과 Major 7th Chord 같은 코드가 가지는 특이한 분위기와 느낌 같은 것을 활용해서-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테크닉의 변화도 '다양성의 추구'라는 이름 하에 굉장히 많은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음악과 미디어와 조명 같은 것을 활용한 분위기 때문에, 사실은 예배드리는 것이 아님에도 감정적 도취에 빠져 마치 지금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몸을 리듬에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당신은 인도자(사역자)로서 예배 드리는 회중을 얼마나 하나님을 향하도록 인도하고 있습니까? 

 

2007년 IVP에서 발간 된  '퀸틴 슐츠'의 <하이테크 예배>란 책에는 '기술 활용에 필요한 원리와 예배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빠른 혁신만을 추구하고 있어 기술이 예배의 독소가 될 때가 많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말과 같이 우리가 예배하는 장소에서 매번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방송실은 어떻습니까? 예배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지금 곡의 어떤 부분을 부르는지 PPT 가사를 자주 놓쳐서 스크린의 자막이 왔다갔다 하는 일을 자주 보셨지요? 그런 상황이니, 회중은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맙니다. 가사나 내용과 상관없는 다양한 이미지와 영상들은 또 어떻구요?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오직 청중이 감당할 몫이 되어 버립니다. 이를 대비하여 리허설은 제대로 하고 계십니까?

 

당신이 예배인도자이거나 찬양인도자라면, 모든 것을 정말 주의해서 준비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어떤 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PD가 나와서 순서자들을 시간에 맞춰 내보내기 위해 무전기로 소통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목적과 규모에 맞게 하는 것은 뭐라고 못하겠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아니라 '공연'이나 '방송국'에 와 있는 느낌만이 자꾸만 드는지 모르겠더군요. 물론 철저히 준비해야죠. 하지만...

 

잘 준비되고 환경도 잘 갖춘 곳에서 '하이테크 기술'을 접목하여 예배를 돕는 것은 다가오는 세대에는 더욱 전문성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예배의 본질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분명 생길 것입니다.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래서 사역자들을 잘 선별해서 뽑아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분 나쁜 경험이 있습니다. 이 내용만 보아도, 이미 교회 내에 예배를 준비하는 것에 있어 얼마나 외형적인 것에만 치중하기 시작했는지 조금 알 수 있을 겁니다. 

 

세종시의 어느 교회에 지원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찬양사역자를 구한다고 해서 제출했는데, 돌아온 답은 어처구니가 없었죠. "아무래도 앞에 서는 사람은 젊은 사람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게 제가 거절된 이유였습니다. (웃으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제 사진엔 흰머리도 없고 나이 든 노인의 모습은 없었는데, 주민등록 번호를 쓴 제가 실수한 것이겠죠?ㅎ) 그래서 즉시 답장을 써 보냈습니다. " 그 교회에서는 쇼를 할 사람을 구하시는 모양이지요? 저도 그런 곳은 싫습니다."라고. 

 

예배를 섬기는 일에는 특별히 그 일을 섬기기에 적합한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은 맞는 일입니다. 구약성서, 레위기를 보면 성막(지금말로는 성전이죠)에서 제사를 위해 섬긴 이들 중에는 어떤 일에 대해 실력이 뛰어난 사람,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 등이 선출되어 섬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을 우리 세대에서 쓰는 전문 기술자-프로-라고만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만, 최소한 그 일에 능숙한 사람들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들이 예배하는 자들을 대표하여 회중을 이끄는 인도자로서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의 규모가 작고 여러 면에서 환경이 좋지 못해도, 기타 하나만으로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안 되면 함께 박수로 리듬을 맞춰가며 목소리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찬양곡들은 Full Sound가 많습니다. 당연히 그 곡을 예배시간에 하려고 한다면 연주자나 필요한 악기가 없이 그 분위기나 느낌이 날 수 없지요. 아무리 카피를 잘 해도 그것만으로 그 곡을 선곡한 당신(인도자나 팀)이 느낀 그런 것을 끌어낼 순 없을 겁니다. 진정한 예배는 그런 분위기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별 것 없어도 하나님을 정말 경험하면 그냥 기뻐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외침, 바로 그게 예배이고 찬양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예배를 쇼로 만들지 마십시오. 라이브로 하는 실시간 연주에서는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듯이 예배시간에 연주나 노래로 섬기는 분들이 틀릴 수 있습니다. 그것에만 집중하면 지금 그 예배를 섬기는 그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안 틀리고 했는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공연 이상은 될 수 없습니다. '삑사리' 한 번 났다고 하나님이 심판하실까요? 아닙니다. 경박해 보여도, 바지가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예배하며 춤췄던 다윗을 하나님이 심판하셨나요? 아닙니다. 흠많고 부족해도 다윗에 대해 하나님은 '내가 기뻐하는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의 진심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그 '진심'을 보여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회중이 그렇게 될 수 있게 돕는게 사역자들의 일이며 사명입니다. 본질을 놓치지 마십시오!

 

쇼 같은 예배, 안 됩니다.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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