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사역, 봉사

정말 [그리스도인]입니까?

음악노트 2021. 6. 7. 11:15

[교회]는 예배당에 참석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속한 각 개인이자, 거듭난 각 개인이 모여 이룬 공동체라고 했다. 하나님과 인격적 사귐(코이노니아)이 없다면, 그는 교회가 아니고, 공동체에 속한 자도 아니다 '예배당'에 가서 '예배모임'에 참석한다고 해서 그를 '그리스도인' 혹은 '성도'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런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혹은 기독교인, 예수쟁이. 이 모든 개념은 '사귐kononia'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개념은 사도행전 11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기독교 역사 속 첫 순교자인 스데반의 죽음 이후 일어난 박해로 흩어지게 된 자들이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듣고 믿게 된 자들이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예루살렘의 교회에서는 이를 알고 '바나바'라는 사람을 보내 그들을 가르쳤고, 이후 바나바는 사울(=바울)을 데리고 와 1년 동안 안디옥의 교회에 있는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이 모든 내용을 훑어보자. 교회는 건물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란 의미는 각 개인이자 믿는 자들의 모임이라는 것에 비중이 더 많이 주어져 있다. 또한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라는 것 역시 건물보다 공동체에 더 포커스를 많이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회에 대해 두 번에 걸쳐 이야기 하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기 위함이다. 자신이 성도 혹은 크리스천이 아님에도, 예배당에 가서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믿는 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믿음은 '생명'과 연관된 매우 중요한 것이다. 믿음 아닌 것을 믿음으로 알고 살았는데,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는 널 모른다'는 충격적 선언을 듣는 불쌍한 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 규모는 성장했지만 '거품'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거품은 하나님과 상관도 없고, 예배당의 마당만 밟는, 모양만 신자인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누구도 예외가 없다. 누구나 믿음과 상관 없이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며 살 수 있다. 회개도 거듭남도 없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성경은 가르치는데도 결석하지 않고 출석하는 것만으로 '주일 성수'를 하고 있다는 큰 오해를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 '지금, 여기' 이 시간에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 변화를 받아 새 마음을 받은 사람이어야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그의 교회요,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단 1도의 각도차이는 거리가 늘어날 수록 엄청난 차이가 난다. 길에서 벗어난 줄도 모르고 살아가다가 문득 돌아보니 돌이키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현재'를 살펴야 한다. 그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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