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사역, 봉사

왜곡 된, '서비스'

음악노트 2021. 7. 28. 11:02

며칠 전부터 계속 마음에 맴도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라는 개념이 무척 왜곡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고, 곧이어 '갑질'이라고 부르는 그것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었습니다.

'손님은 왕이다'
어린 시절 어느 날부터 이 한 마디는 사회에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냉철하게 이 말 뒤에 숨은 동기를 들여다보고 해부했습니다. 바람직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과 문화는 서비스를 마치 왕을 시중드는 하인처럼 '굽신거림'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하는 길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당연한 가치'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서비스란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봉사'입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담은 봉사죠. 다른 말로는 '섬김'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섬김'이란 종처럼 굽신거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식당의 주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식당은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입니다. 기본은 음식을 맛있게 해서 필요한 사람들이 매장을 찾아와 대가(돈)를 내고 찾아와 먹습니다. 주인장은 매장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고마워서 기쁜 마음으로 편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당연하지'라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사장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식당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하고 공유하는 것이며, 가능한 만큼의 수고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동기를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누가 매장을 찾든 안 찾든 - 그것이 자기 행복이자 꿈의 실현이고 생계까지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라면 - 자기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손님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공받기 위해 돈을 내는 것입니다. 사장은 손님이 할 수 없는 것을 대신 제공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고, 손님은 그 서비스가 필요해 거기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이미 원하는 것을 제공받았으면서 그 이상의 것을 바라고 불평하고, 기분 나쁘면 주변 사람에게 상대에 대해 폄하하고 안 좋은 소문을 내고, 심지어 그것을 제공한 사장에게 자기가 마치 왕이라도 된 듯이 군림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폭력까지 행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갑질이야말로 요즘 말로 '인권침해'이자 '폭력'아닐까요? 사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제공하겠다는 그것을 제공했으면 약속을 이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손님이 떨어질까 봐, 상대의 갑질로 인해 피해를 볼까 봐 굽실거리며 '감정노동'을 하도록 스스로 몰아가고 있다면 그 역시 잘못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로나사태를 겪으며 교회도 그동안 잘 깨닫지 못해 왔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냥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제공하는 라이브 송출에 접속하면 되는데 이제는 좀 더 색다르고 편하게 제공되는 예배 중계(?)를 선택하며 식당에서 메뉴 고르듯 고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이미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더 편한 공간,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 조금 더 현대적이고 자기 감성에 맞는 예배형식과 설교가 있는 곳을 찾아 철새처럼 찾아다니는 그리스도인들. 이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가 많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를 드리는 서비스-예배를 영어로 표현할 때 Worship Service라고 하죠-를 하는 건데 현대교회 공동체는 점차로 예배당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구조로 몰라보게 변모해 버렸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어느 교회들은 사회조직과 별로 다르지 않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처럼 변질이 되고 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이웃(사람)을 대해서 섬기는 기능을 잃어가는, 아니 어쩌면 이미 잃어버린 많은 교회들이 있기에 지금 사회로부터 칭찬이 아닌 욕을 먹고 있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든 교회공동체가, 전체 사회가 모두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회 전체에 존재하는 이런 질병들이 언젠가 파도처럼 몰려올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기억하자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와 같은 질병만이 아니라 사회를 언제든 혼란하게 하게 멈추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소들을 뽑아내지 않으면 사회도 교회도 안전하게 지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에 무심코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집어내어 가시화시키고자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적어도 '기독교'는 사람들의 영혼과 생명과 구원을 이야기 한다고 스스로 외쳐왔지 않습니까? 그렇게 중대하고 소중한 일이라면 그냥 남들과 구별된 어떤 것도 없고 오히려 더 못난 모습을 보이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이 우릴 섬겨주셨을 뿐 아니라 목숨도 다 내어주셨으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정작 필요할 때는 꽁지를 빼고 도망가며 '교회는 교회법이 있으니 건드리지 마라'며 비겁한 변명이나 늘어놓는 추태를 보이는 일은 더 없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먼저 회개하고, 교회가 먼저 봉사해야 합니다.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지금 그 공동체가 위치한 동네에서라도 제대로 된 봉사를 하고, 그 공동체 자체라도 올바른 예배를 드리면서 빛을 비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아, 우리도 저렇게 살아야지'라고 마음을 고쳐먹는 그런 일들이 자연스레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곡 된 '교회 봉사'.
가장 큰 계명이라는 '하나님 사랑 + 이웃사랑'에 대해 점검해 봅시다. 마음에도 없고 사랑도 빠진 봉사는 아무 의미도 열매도 없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예수 믿으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라는 인간적 신념에서 온 것은 참된 봉사가 아닙니다. 그건 신앙도 아닙니다. 진짜로 하나님을 만나 거듭나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어서 하는' 그런 봉사가 참된 서비스입니다. 회개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서 빛과 소금처럼 맛있고 밝은 삶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깨닫고 돌이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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