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사역, 봉사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공동체

음악노트 2021. 8. 2. 14:53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웃사라이어야 한다고 찰스 웨슬리는 말했다고 합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과연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만약 우리 의지를 동원해 그저 율법을 지키고자 결단하고 적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될 순 있어도 성경이 말하는 온전하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거듭난 사람의 본성에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급적 매일마다 노트북에 저장된 노트-저는 이것을 '모닝노트'라고 부릅니다-에 나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꾸밈없고 가감없이 모두 적어내려갑니다. 오늘 아침도 변함없이 글을 쓰다가 내 안에 눌러져 있던 숨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잠시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투명하게 나를 내어보일 수 있는 것이 참된 관계라는 사실이 명확히 다가왔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을 어떻게 지키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니 '투명함'과 '정직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나의 부끄러움도 무릎 쓰고 터놓을 수 있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관계를 지향하는 것이 건강한 관게입니다. 신앙생활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회개가 이 과정과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동안 숨겨온 아픔과 죄와 상처와 여러 감정들을 모두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하고 토해내는 것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고, 상대방의 용납과 위로와 다독임을 통해 아픔이 해소되는 과정은 치유(요즘말로 힐링)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벌거벗은 것이 부끄럽지 않은 관계'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습니다. 제 나름대로 성경에서 이것을 잘 표현하는 한 단어를 찾아본다면 당연 '친구'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표현으로는 '배꼽친구' 혹은 '부랄친구'라고 부르듯 서로 너무 잘 알고 허물이 없는 관계 말이죠. 신앙생활이란 이런 관계가 지속되며 동행하는 것을 누리는 삶을 의미합니다. 교회와 세상을 구분하는 이분법적인 틀에 묶여 예배당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가정이나 직장에 있을 때 드러나는 모습이 다르다면 그건 위선입니다. 너무나 자주 이 위선적인 가면을 쓰고 사는데 익숙해져 있는 공동체들이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또한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너무 잘 알 것 같습니다.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즉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러한 관게는 불가능하지요. 결국 우리가 가면을 쓰는 이유는 '불신'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에게나 하나님에게나 다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뉴스에도 '사랑제일교회' 관련 기사가 났습니다. 자신들은 신앙을 지킨다는 명목을 말하지만 그건 이웃사랑과도 하나님 사랑과도 상관없는,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일일 수 있음에 눈을 가리고 사회에 염려를 끼치고 예수의 이름에 욕을 먹이는 이런 행위는 비단 이 공동체가 아니라도 요즘 너무도 자주 납니다. 글을 쓰는 저도, 글을 보고 있는 그대로 모두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결코 우리가 저들보다 낫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 어느 한 단면에도 드러나지 않는 어긋나고 때론 추악한 모습들이 숨어 있을 수가 있지요. 어느 누구에게도 한 번 말하지 못하고 자신을 수치심에 사로잡히게 하는 여러 행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다만 저들처럼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구요. 그러니 저들의 잘못을 '나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몸'이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들과 나는 다르다는 태도는 교만이요, 한 몸을 나누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구분하면서 자신을 의인이자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은 연합을 깨는 행동임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에게도 이웃에게도 사랑보다는 오히려 폐를 끼치고 마음 아프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멈추고, 바른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공동체. 우리가 반드시 지향해야 합니다. 서로를 축복하는 노래를 부르며 웃음짓는 잠시의 시간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좋은 공동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말과 혀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주변 사람이 힘든데 말로만 '힘내'라고 하는 것은 행함 없는 믿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힘을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실제로 함께 있어주며 필요한 것을 살피고 기꺼이 가진 것으로 나누어 주는 것이 참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우리 공동체, 가족, 내 친구 중에는 그동안 시선에 들어오지 않은 여러 사정으로 아파하는 사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걸 알아봐주고, 힘이 들 때는 자신이 먼저 그것을 편하게 고백하고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가능한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어떻게 실현 가능할까요?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관계하는 방식-코이노니아-을 살펴봄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시면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을 품게 되면 자연스레 상대방과 이웃을 향해 자신을 내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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