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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조각모음

거짓뉴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2020. 6. 22.

지식과 정보의 바다에서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있습니까?

거짓 뉴스만 있는 건 아니다. 거짓 복음 (혹은 반쪽짜리 복음)도 있다. '예수를 믿으면 복을 받는다'는 이 말,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명제는 진실이다. 하지만 오해될 여지가 크다. 지금의 어려움과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를 믿어 보자고 하는 경우가 그렇다. '복'이라는 개념 또한 그렇다. 돈 잘 벌고, 병도 고침 받고, 길이 뻥 뚫리는 것이 복인가? 아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 뜻을 따라 살았더니 복을 주시는 것이다. 

 

기복적인 신앙과 성경적인 신앙, 그 사이를 오가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말씀을 온전히 전하지 못한 자들의 책임이 우선이다. 그다음은 말씀을 받는 사람 역시 책임이 있다. '그것이 정말 성격적인가?'를 되묻거나 살피지 못한 것은 자신에게 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의 시스템이 불안정한 것이다. 성경적 산앙과 기복신앙을 구분해야 한다. 머리로는 알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알리딘의 요술램프요정 '지니'와 같은 존재처럼 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던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선지자나 제사장들까지도 다 거짓을 행한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도 '평강 하다, 평강 하다' 하지만 평강이 없다"(예레미야서 6:13~14)고 하셨다. 인생을 살며 겪는 여러 고난 속에서 받는 아픔도 모자라 영혼에 깊이 새겨진 상처들을 가진 사람들에게 너무도 가볍게 '예수 믿으면 된다'라고 말한다. 절박한 사람들은 이 복음을 붙잡지만, 하나님과는 인격적인 만남과 거듭남도 없이,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에게 허락된 것을 받을 리 만무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해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은 분명한 진리이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를 위해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그 방식대로 응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기초는 우선순위를 뒤엎고 본질을 흐린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천국이 아닌 지옥에 더 가까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는 믿음에 대해서 한 번쯤은 깊은 반성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우리들은 과연 진짜 믿음을 증명하는 삶을 사는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단순하게는 '내일을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반쪽짜리 혹은 거짓복음에 속아 모든 것을 탕진하며 속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서에서 표현한 것처럼 자기 자신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마당만 밟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누구의 책임인가? 다시 말하지만, 사역자의 책임이 제일 크다. 그리고 성도 자신의 책임 또한 크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을 보면 '베뢰아'라는 지역의 성도들은 날마다 말씀을 보며 '그것이 그런가 하여' 말씀을 곱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리는 각자 세상을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어, 그것을 통해 주변을 본다. 그 안경을 '패러다임' 또는 '가치관' 등으로 부를 수 있다. 그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스템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독단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날마다 점검해야 한다.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너희가 믿음에 서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라고 했다.(고린도후서 13:5)  

 

오늘날 신앙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거짓이 아닌 '참 진리'안에 서도록 꾸준히 자신을 돌아보는 삶이다.세상에만 거짓 뉴스가 있는 게 아니다. 지도자와 우리 스스로가 만든 거짓 뉴스와 거짓 복음이 있다. 그것을 걸러내고 또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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