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회사역 제안서

두려움을 가진 사역자인가?

by 음악노트 2020. 8. 31.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과 '잘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들과, 심지어 하나님조차 응답하지 않는 것 같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본 적 있는가? 최근에 간간히 책들과 TV를 보면서 나 자신을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의 눈 앞에 자리 잡고 앉아 예배하는 성도들의 그 치열한 삶을 향해 피상적인 메시지들을 전해왔는지 심각하게 되돌아 보았다.

 

언제부턴가 가족들과 멀어진 듯한 그러나 생계를 위해 매일 야근도 불사하는 아버지들의 삶,  결혼과 함께 꿈꾸던 목표의 일부를 포기해야 하거나 '가사'라는 짐을 지고 가는 어머니들의 삶, 패기와 열정으로 미래를 꿈꿔야 젊은 시절에 오히려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 어찌된 것인지 발전하고 있다는 사회에 대한 전망과 달리 서민의 삶은 이리도 팍팍해지는지...그 곳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 숨쉬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삶을 우린 헤아려주고는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이 마음에 계속 스쳐갔다.

 

목회현장도 치열하지만 종종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 교회는 건물과 크기에 얽매이게 되었을까..누군가의 담보와 보증을 통해 건물을 사고 그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어쩔 수 없어 건물을 다시 파는 악순환을 왜 반복 하고 있는지 생각할 수록 답답하다. 모일 만한 장소만 있으면 비용을 주고 소규모로 모여서 목회자든 성도든 자신의 수고와 노동을 해가며 단순히 예배할 순 없는 것일까? 차라리 필요한 자원이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만큼의 사역을 할 수는 없을까?

 

온갖 종류의 훈련을 받았다고 해서 진짜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다. 예수를 제대로 만나야 참 그리스도인이지 않은가. 진짜가 되기 위해 서로 힘써주고 돌봐주어야 하는 것이 바른 길일텐데 매일 온갖 씨름을 하다가 온 사람들에게 단지 주님은 모든 걸 아시니 꼭 응답하셔서 결국 복주실 것이라는 피상적인 답을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그정도는 안다. 기도해야 하는 것도. 힘들어도 견뎌야 하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 울어주는 눈물이요,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식상한 메시지가 아닌 예수께서 나와 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400년 노예의 삶을 견디게 한 것은 오직 하나, 나와 우리들의 신음과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들의 소리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다. 죽을 것만 같아도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들이 먼저 회개해야 한다. 피상적인 사역을 접고, 피를 토하며 '예수의 얼'과 '예수의 삶'을 외쳤던 믿음의 선배들의 발걸음을 따라 우리도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진짜가 아닌데도 진짜인줄 착각하게 만들고 결국 멸망길로 가게 둔다면 삯군 아닌가! 목회는 생명을 필요로 하는 무거운 사역이다. 대가를 치뤄야 한다. 두려움으로 감당하자.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결국 우리들 목회자의 탓이다. 이제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