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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사역 가이드

쏟아지는 음반을 바라보며(2012)

by 음악노트 2020. 8. 31.

+ 이 글은 2012년도에 제가 운영하던 카페에 썼던 글입니다. 

 

아침에 갓피플 뮤직을 열어보니 오늘은 '마커스 라이브 워십 in korea' 앨범이 출시되었네요. ^^ 그러고보니 요즘 개인 뿐 아니라 각 교회에서도 실력있는 팀들이 여러가지 앨범을 출시하고 있었군요. 싱글앨범 출시와 더불어 정규앨범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기독교음반 흐름에도 나타나고 있군요. 좋은 현상입니다. 동시에 우려되는 것도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교회가 전체적으로 통일되게 부르던 찬양들이 개교회나 공동체로 나뉠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번역의 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경배와 찬양, 예수전도단 등 집회형식의 찬양을 주도하던 흐름이 이젠 특정 색깔을 가진 팀들이 많아지게 됨으로 함께 모였을 때 매번 새로운 곡을 배워야 한다거나 회중의 다수가 함께 부르기보단 '공연'같아져서 회중들의 참여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지요.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요즘 출시되는 악보집만 하더라도 같은 곡의 다른 번역 등으로 인해 불편을 느꼈던 점이 있었던지라 한쪽으로만 치우친 흐름이 나오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어서요

 

둘째, 음반을 소개하는 내용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Hosanna Integrity Music의 경우, 오래 전에는 앨범표지에 리더나 개인의 얼굴이 들어가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Ron Kenoly 목사님의 앨범이 나오면서부터 워십리더의 얼굴이나 다양한 컨셉의 앨범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 앨범은 너무 자연스럽게 '천상의 소리', '최고의 워십', '워십의 혁명'과 같은 말을 남용하는 것 같습니다.뭐, 원래의 의미를 따지자면 '경배와 찬양'이란 것도 특정팀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에 대한 것인데 그 단어가 한정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어쨌든, 하나님을 높이는데 누가 최고이고, 어떤 뮤지션이나 가수가 만들었는가에 대해 기준을 만들고 잣대를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차라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마음을 담아 만든 (우리 팀/가수~의) 최선을 다한 앨범'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네요. 더우기, 이런 말이 조심스러운 건...간혹 들리는 사역자들의 인격에 대한 문제와도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도 한 CCM 사역자가 (최근에 일반방송에서도 관심을 받았었죠) 오래전에 왔을 때 자기가 노래하는데 방해된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떠들수 있는 꼬마를 바로 앞에두고 뭐라고 했다고 하면서 별로 좋지 않은 소리를 하더군요. 음반의 결과물이 좋다고해서 '최고'라고 쓰기엔 좀 무리수가 있겠죠? 적어도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사람들의 유행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면 그건 좀 본질에선 벗어나는 일이지 싶어 이야기 해 봅니다.

 

셋째는 노래가 좀 어려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회중이 함께 하려면 조금은 쉽게 따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리듬도 곡 스타일도 너무 힘든 곡이 많습니다. 물론 쉽고 깊이 있는 곡들도 많이 나옵니다. 그럼에도 이 부분이 중요하단 말을 하고 싶네요. 아직은 7080세대라 부르는 사람들도 공존하고 있고, 더 나이 많으신 어른들이 드리는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나오는 찬양을 어른용, 청소년용, 이렇게 구분해 간다면 함께 드리는 '공예배'의 의미와 중요성은 퇴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연령과 문화에 맞게 예배공간이 분리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연령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의 중요성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척교회'나 '소규모 교회'경우에는 장소나 여건 때문에도 다양한 연령층 (심지어 유치부부터 장년부까지)이 함께 예배합니다. 이들도 지금 나오는 곡을 가지고 함께 부르고 싶어하고 예전에 은혜를 받았던 곡들도 부르고 싶어하죠. 이런 공존의 흐름을 교회가 무시해서는 안 될 거예요.

 

특히 예배인도자들이 놓치기 쉬운 것이 있는데 요즘은 워낙 PPT와 같은 미디어도구를 가지고 가사도 띄워주고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이 다같이 예배할 수 있다고 보기 쉽겠지만 화면에 악보가 없고 글씨(가사)만 나오는 경우가 많죠. (악보를 띄우자니 구입을 해야하는데 정품보단 불법다운로드를 해서 쓰는 경우까지도 있으니 참 문제죠) 그렇다면 새로운 곡이나 조금 생소한 곡들은 악보를 미리 준비를 해서 함께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미처 여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더군요. (교회에서 배출되는 이면지만 잘 이용해도 집회에 필요한 악보제공도 가능한데 말이죠)

 

어려운 곡이 많아지고, 한국교회나 세계에서 활동하는 팀들의 영향이 많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음반출시의 홍수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기본적인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멀티미디어 시대'에 예배를 어떻게 담당하며 세대간의 거리를 좁혀 나갈 것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의 흐름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부분들도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들, 침묵을 어려워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잠시도 가만히 기다리지 못하는 세대, 반주자의 반주가 없으면 음반이라도 틀어놔야 비로소 큰 소리로 기도가 가능한 사람들... 이런 모습을 한 번씩 보노라면 예배를 인도하는 자리에 오르는 제 가슴은 무겁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음반을 내십시오. 그것을 통해 많은 고백을 세상이 듣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을 알리십시오. 그건 중요합니다. 다만 본질을 놓치지 않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이건 특정 앨범에 대한 홍보나, 글 내용과 상관 없이 대표 이미지를 위해 사용한 캡쳐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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