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란 무엇인가(Denis Lane)

교회사역 제안서 2020. 5. 24. 16:1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교회교육'이라 하면 여러 분야가 있겠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교회교육은 결국 말씀일 것입니다.  설교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며 강연과는 다르지만 그 역할에 있어 교육적 요소가 분명 존재합니다. 1991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설교에 대해 큰 도움이 된 분이 있습니다.  데니스 레인 목사님의 책,  Preach the Word (한국 제목: 데니스 레인 강해설교)에서 나온 일부분을 요약정리했습니다.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 강해설교란 무엇보다도 먼저 원래의 저자가 그 본문을 썼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능한 한 정확히 발견해 내는 것이다. 왜 성령께서 그 본문을 쓰게 하셨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강해설교란 그 본문 속에 나타난 진리가 설교를 듣는 회중의 특별한 심령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강해설교란 그 찾아낸 진리를 회중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회중이 그 특정한 본문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메시지에 반응해야 함을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 적용되지 못하는 강해 설교는 마치 한쪽 편에만 연결되어 있는 다리와 같다. 성경과 사람(회중)과 설교자, 이 모두는 강해 설교 과정 속에 참여한다. 이것이 바로 강해 설교이다. 

사람들은 종종 강해설교를 오해한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강해설교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설명하고자 한다.  성경 본문의 한절 한절을 순서대로 설명하거나 모든 구절을 차례로 설명한다고 해서 그것을 강해설교라 볼 수 없다. 본문에 나오는 신앙의 교리를 오늘날의 생활과 연관시키지 않는 설교는 강해설교라 할 수 없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본문을 찾아내어 그 문백과는 상관없이 우리 생각을 그 본문을 통하여 말하는 것도 강해 설교가 아니다. 어떤 본문을 우리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도약대로 삼고 그 본문 주제와는 아무 상관없이 설교하는 것도 강해 설교가 아니다.

 

강해설교란 큰 책을 취하여 오랫동안 계속 설교하는 것도 아니다. 강해설교는 회중들에게 설교자의 신학적 지식과 언어적 능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사용되어서도 안 된다. 본문에도 없는 말이나 이야기를 하고, 자극을 주는 영적인 의미를 취하거나 혹은 평범한 뜻을 심오한 영적인 진리인 양 해석하는 것도 강해 설교가 아니다. 스스로 강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설교자들이 이상과 같은 실수를 자주 저질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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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 사역'을 제안합니다.

교회사역 제안서 2020. 5. 23. 16:34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저는 독립교단, 정확히는 KAICAM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에서 안수를 받은 사역자입니다. 요즘 교계의 흐름을 볼 때에도 '부교역자'(부목사/전도사 등)가 되어 섬기기엔 어려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개척> 혹은 <협력 목회>와 같은 방향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보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 오늘도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자유함을 누리도록 하는 사역을 꿈꿉니다.

'나사로 사역' 

이렇게 네이밍(naming)을 했습니다. 

 

교회의 사역현장을 돌아보면서 떠올린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자꾸만 안으로 움츠려 드는 모습입니다. 물론 많은 교회들이 다양하게 이웃을 섬기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아직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공동체라기보다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을 향해 나가야 하는데, 사람들을 교회로 초대하여 무언가를 하는 형태가 아직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종종 사역자들이 성도들을 '손안에' '내 시선이 닿는 곳' 그런 바운더리 안에 두려고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제가 개척을 하거나 독립된 공간을 통해 어떤 활동을 하면 기존의 교회들과 전혀 다를게 더 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저도 제 틀을 벗어날 수 없고, 그렇게 되면 함께 하는 사람들 역시 그 틀 이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통을 잘 유지하면서도 각자의 색을 잃지 않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는 '이상 속 비전'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노력할 것입니다. 그게 <나사로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의 형태 가운데 마음에 꽂히는 장면 하나가 있습니다. 죽음에 이른 영혼을 살려내신 것도 인상 깊고 꽤나 믿기지 않는 기적적인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나사로를 풀어주어 다니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죽음에서 생명을 얻게 합니다. 그렇게 살아난 사람은 무덤에서 벗어났지만 나사로에게는 아직 자신을 감싸고 있는 천이 둘러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풀어주어 다니게 하는 것은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몫입니다. 사역자는 성도들을 이렇게 자유롭게 다니도록 '풀어주는 사역'을 해야 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나사로 사역>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꼭 이 일을 성실하게 해내고 싶습니다. 

 

아침에 페이스북 <문화전도연구소>에서 인상적인 글을 봤습니다. "지금까지 전도의 본질보다 현상에 목숨을 걸었다. 전도는 내 교회가 아니고 복음 그 자체를 전해야 한다' 깊이 공감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들을 사람에 몰두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명이었으니까요. 예수님은 자기에게 사람들이 모여들 때마다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을 모으고 인원이 넘치면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고치고 회복시키신 다음 반드시 '집' 또는 그가 속한 '사회' 속으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역자들이나 교회에서는 사람들을 '섬김'이란 미명 아래  교회에서 봉사하도록 합니다. 오해는 마세요. 교회에도 사역을 돕고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걸 비판하는 게 아닙니다. '주의 일'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오히려 묶어놓는 사람들도 있어서 안타깝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나 왜 사람들이 봉사하면서 오히려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 보세요.)

 

사역자들에게 제안합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얻어 일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풀어주는 사역을 해보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샘영과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증명할 수 있도록 돌려보내야 합니다. (얼마 전 언급했던 것처럼) 각 가정과 마을과 연계하여 함께 서로를 살리는 그런 사역 형태를 연구하고 개발하면서 공생하는 사역을 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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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 지붕 여섯 교회

추천 + 자료모음 2020. 5. 22. 18:4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페이스북에서 소식을 보고 공유하고 싶어서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찾아보고 링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m.kmib.co.kr/view.asp?arcid=0924139224

 

m.kmib.co.kr

http://m.kmib.co.kr/view.asp?arcid=0924139224&code=23111113&sid1=chr&fbclid=IwAR2x3MeyJ9OXReFnAdg1-pv7cWcWwzZ3WKErGB9NYbG3fgC7p9HrcU-O0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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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인사이트 [시청률에 미친 PD 들]을 보고

생각의 조각모음 2020. 5. 22. 16:31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KBS 1 TV <다큐인사이트>

어젯밤 KBS 1 TV에서 관심을 끄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다큐 인사이트'라는 제목인데 어제 주제는 <시청률에 미친 PD들>입니다. 현직 PD들이 유튜버에 도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관종"이 뭔지는 아시죠? 유튜브는 이 관종에 속하는 이들에게 좋은 의미에서의 문을 열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주인공인 두 명의 PD는 각자의 타이틀로 열심히 영상도 찍고 편집하고, 수익성도 높은 유튜버들을 찾아가 비결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들 고수들도 스스로를 '관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자기를 갈아 넣어야 한다'는 웃픈 표현을 쓰더군요. PD들도 그랬지만 저도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다들 저렇게 열심을 넘어서 죽을힘을 다해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말에 공감이 가더군요. 

 

반면, 마음 한 켠에 씁쓸함이 올라왔습니다. 프로그램 내용 때문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사역 현장에서 수고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마음이 '짜~안'해서 그랬습니다. 이젠 정말 사람들이 '흥미 있는 것'을 찾는 콘텐츠 소비자일 뿐 아니라, 직접 그 방송을 하는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피드백을 하면서 '이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시대입니다. PD들 역시 자신들이 올린 콘텐츠에 대한 이런 반응이 낯설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 같은 사역자들이 마주대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기대하는 청중이자 소비자로서의 성향이 더 강화된 이들일 것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자극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교회가 가진 콘텐츠는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동시에 기본에 대해 놓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어느덧 사역자들은 무대 위에서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늦기 전에 방향을 돌려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신의 경주를 하는 선수가 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점차 우리들은 정해진 예식에 수동적으로 참여만 하는 관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흥미를 끄는 설교자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새 참여자가 아니라 선택해서 소비하는 성향으로 바뀌어가는 현상이 없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흐름이 있다는 것이죠. 사역자나 리더자들이 어려운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요구하면 아주 무시하지만은 못할 것입니다. YES MAN (예스맨)이 되어 버려선 안 됩니다. 재미있게 좋은 콘텐츠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찬성인데 본질을 흐릴 만큼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인기'에 목마른 사역자는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쯤은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지켜내고 변화에 잘 대응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교회와 사역자와 섬기는 리더들이 이 부분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사람들이 회중이 아닌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선수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전투적으로 잘 살아내도록 훈련하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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