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오용되는 사회

생각의 조각모음 2020. 5. 1. 16:56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요즘 본래의 의미가 오도되고 잘못 적용되는 단어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인권'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유가 중요하고 인권은 소중한 것입지만,  조금 돌아보면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인권이란 명분 아래 자신의 죄를 합리화 또는 외면하는 것으로 인해 평생 어두움에 갇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인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 인권을 존중해 주어야 할까요? 이 단어를 자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가져다 쓰는 뻔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행동이나 범죄를 짓고도 '정신적 문제'와 '인권'에 호소하고 기대며 형량을 줄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 민감한 주제이지만) 동성의 결혼이 허용되는 것과 퀴어축제에 대해서도 저는 걱정합니다. 아무리 사회가 각자 주장할 권리가 있고 인권이 있다지만 이런 식으로 여러 범주에서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씩 다 허용이 되어 간다면 '질서'란 무의미해지고 말 겁니다. 이런 다양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과 이웃들은 왠지 자꾸 외면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때때로 가해자는 보호받고 피해자와 그 가족은 오히려 외면당하는 역기능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정부는 알고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을 자주 봅니다. 보통 이런 곳에선 모두 지켜야 할 공공의 질서가 있는데 공연히 부딪히고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 자연스레 외면하는 풍토가 많아진 듯 합니다. 하긴 세상이 하도 무서워져서 괜히 말을 했다가 해코지를 당하는 일도 많아지니 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저는 종종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마음껏 통화할 자유만큼이나 나도 그것을 듣지 않을 권리 또한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CCTV 같은 감시체계가 눈에 띄어야만 겨우 제한 속도에 맞춰 줄이곤 하는 우리네 운전습관은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보이기 위한 행동, 벌금 등 손해를 당할까 싶어 잠시 하지 않는 그런 행동들은 모두 가면 뒤 모습들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질서를 말하면서도 금세 보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횡당보도를 넘어 달려가는 행동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모든 사람이 자기 인권과 권리만 주장하는 사회는 과연 좋은 세상일까요? 서로 살자고 마련한 법인데 어째 점점 특정 사람들만 그걸 이용해서 자기 이득을 취하거나 죄를 짓고도 제도를 이용해 빠져나가는데 쓰이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 하나도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월 수입 7~800만원인데 '생활보호대상자'로 되어 있어서 때마다 주민센터에 가서 차에 가득 물품을 받아오거나, 비싼 의료비를 내야 할 때에도 몇 천 원만 지불하거나 무료로 받고 있고, 이혼했는데도 사실 집에는 남편이 버젓이 있다지요. 위장이혼을 한 겁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겐 돈 없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알까요? 그렇게 얻은 혜택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한 번이라도 고려해 보고 죄책감 혹은 일종의 미안함 정도를 가져본 적은 있기나 할까요?

 

부끄럽지만 교회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지요.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만한 것이고, 때로는 보도가 되고 법정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할 만큼 사안이 큰 사건들인데도, '교회는 교회의 법이 있으니 상관마라'는 식의 대응을 하는 모습, 본 적이 있으시죠? 그렇게 정치나 사회에 대해 '올바르게 하라'라고 소리치면서도 정작 본인이나 혹은 속한 공동체에서 벌어진 잘못에 대해 책임지라 하면 '어딜 감히 하나님이 세운 교회를 건드리냐'며 되려 당당하게 소리치는 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전체의 모습은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움을 유발하는 개인과 단체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지체라는 의식은 이때에도 적용되어 '비록 우리가 저지르진 않았지만 부끄럽다. 이런 일 일으켜 죄송하다'는 마음 정도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됩니다. 

 

공평한 기준이 시행되는 나라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각자가 사는 그 삶의 현장에서 누가 보던 안 보던 서로를 존중하고 선을 잘 지키며, 상대방의 마음에도 귀 기울여주는 그런 풍토가 자리잡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이웃사랑 그것은 '나와 네가 다름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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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한 작업을 위한 도구," WorkFlowy"

추천 + 자료모음 2020. 5. 1. 16:14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교육프로그램을 짜거나, 여러 가지 생각과 작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좋은 방법을 찾고 계시다면 WorkFloy라는 프로그램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훌륭한 Mind Map 프로그램들도 많이 나옵니다. 자기에게 제일 잘 맞는 것을 찾아 사용하면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메모 그 이상으로 좋은 호평을 받는 Evernote와 병행해서 작업하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생각의 흐름은 WorkFlowy로, 필요한 각각의 자료는 Evernote에 정리하면 좋더군요. <워크플로위>로 이 부분으로만 사용하기엔 아깝네요. 어떤 분들을 글쓰기를 위해서도 잘 활용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클릭하시면 <워크플로위> 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이렇게 홈페이지로 접속하면 Web에서도 작업이 가능하며, 맥과 윈도우 모두 사용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활용하여 작업하던 일부 페이지를 캡처해서 아래에 함께 첨부합니다. 

성경공부 커리큘럼 목차를 워크플로위로 작업하는 장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구조를 만들고 살과 뼈를 붙이고 수정해가다보면 작업의 순서라던가 모든 작업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틀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사역에 좋은 도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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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rry, but I can' (미안하지만, 안 되요)

교회사역 제안서 2020. 5. 1. 15:5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코로나 사태가 아니라도 교회 사역을 하며 '거리두기'에 대해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공동체를 섬기는 것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특히 '선 긋는 지혜'가 그렇습니다. 종종 '주님의 이름'과 '사랑과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마음도 몸도 무너지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 반대로 비슷한 명목으로 사람들을 번-아웃시키는 이들 역시 경험했습니다. 이번 이야기를 잘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수많은 영웅이 있지만, YES-MAN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문사역자들, 그렇지 않더라도 교회에 직책을 맡아 섬기는 분들은 사람들의 당연한 듯하는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혹은 순수하게 응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거절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혜롭게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탁하는 사람도, 요청받는 사람도 모두  '주님의 일인데 이 정도야 당연히 해야지' 그렇게 생각해서 아무 생각 없이 '알겠다'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도 되는 줄 알고 말도 안 되는 것을 시키는 사람들의 요구에 순응하면 그때부터는 '노예'처럼 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안 돼겠어요" ^^

예수님께서 일하신 방식을 생각해 보세요. 성경에는 '자기에게 오는 모든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기록도 있는 반면, '그들을 떠나 가셨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신만의 사명을 위해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신 경우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많고 다양한 요구를 들고 몰려들지만 '선 긋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아, 무슨 사역자가 그렇게 딱딱하냐'라고 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런 반응에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처지와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능력을 넘어서는 일까지도 '교회의, 주님의 일이니까'라는 식으로 무심코 받아들이면 절대 안 됩니다.

 

사역자이지만 여러분도 하나님 앞에선 한 사람의 믿는 자입니다. 직분만 구분되어 있지 지칠 수 있고 연약할 수 있고, 너무 바빠 응답할 수 없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정을 '사랑'이라는 것으로 포장해서 사역하지 마십시오. 팩트를 정확히 전달하고 일을 조정해야 합니다. 누구도 이것은 대신해 주지 않고, 당신 사정은 헤아리지 않지요. 당연히 사역자는 이래야 한다는 자신들만의 틀을 가지고 여러가지 모양으로 조종하려는 사람들은 항상 주변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부탁하러 왔으면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러니 미안함 때문에 거절하지 못한다면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잠깐 엇나갈 수 있는 이야기지만, 사역지를 찾아 볼 때 혹은 교회에서 일을 부탁받을 때 <모호한 표현들>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오면 이것만 하면 된다'라고 광고한 공동체 중에 정말 그것만 하게 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시킨 일만 하겠다는 뜻이 아니냐 하는 오해는 마시길 ㅎ) '잠깐이면 돼'라는 부탁 역시 그랬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네'라고 답하며 도와드렸는데 어느덧  '부탁의 파도'에 떠밀리고 '갑질'에 휘둘리고, 참다못해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려니 너무 멀리 와 버려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맞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명확히 하고, 잘 소통해서 조정해 가는 것이 일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지혜입니다.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부탁하는 사람도, 요청 받는 사람도 상대의 상황과 처지를 고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린 늘 그랬다'는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반항에 반응하지 마세요. 서로 윈-윈 하려는 시도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투덜이들의 말만 들어선 사역 현장이 바뀌지 않습니다. 때론 너무 완강해서 오히려 내 자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죠. 그럴 때는 필요하다면 그 자리를 빠져나오는 것도 서로를 보호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의 사명을 이루는 것에는 시간을 들이지 못하고 일에만 끌려 다니는 것은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교역자든, 담임목회자든, 보수도 없이 교회일을 섬기는 사람이든 하나님 사랑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교묘한 위장 전술('하나님 일이니까', '예수 믿으면 사랑으로 다 받아줘야 하니까' 같은 교묘한 말을 빙자하여 사명을 방해하는 모든 종류의 저항들)에 속아 평생을 엉뚱한 일, 남의 일에만 차출되어 다니는 불쌍한 사람이 되지 마세요. 거절하는 것이 어려운 성격이라 해도 이것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제가 나누고픈 핵심이 제대로 전해졌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모든 걸 쏟아 부으며 살아가는 분들께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사명과 관련하여 불 같이 응답하시고, 부르심과 관련 없는 일에 일일이 응답하다가 스스로 불에 타 사라지는 사역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여러분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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