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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세요. 괜찮아요

함께 소속되어 일하며 서로 마음을 써주는 건 고맙고 흐뭇한 일입니다. 내가 기쁘게 마음을 열만한 무언가로 인해 베풀고 헌신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세요. 몰라준다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마음을 마음으로 받지 않고 계산하고 뒤에서 험담하며 이용하려는 누군가가 존재할 때 입니다. 스트레스와 상처 받기 쉬운 상태가 되고 말거든요. 관계도 봉사도 모두 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과 정(마음)을 구별해야 하며, 이럴 때일수록 분명한 거절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해 오던 것이 있어 단호해지지 못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거절해도 되고,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하십시오. 서로를 위해 거리를 두고 정 때문에 끌려다니지 말고 거절을 통해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헙니다. 그걸 가지고 감정적으로 나오..

내 몫을 남겨두는 지혜

책을 읽다 고로쇠나무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약 20일 정도만 자신이 지닌 수액을 내어준다고 하네요. 자기에게 남아도는 물은 내어주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남겨둔답니다. 아하! 그렇습니다. 사역도 봉사도 신앙생활도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도 깨닫고 실천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이란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과는 다르답니다. 지금 교회 공동체와 많은 지체들이 지독한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힘들면 꼭 쉬었다 가세요

비싼 차가 신분은 아니지요

올해 초였던가요,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를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그 비싸고 고급스런 차를 가진 아들 혹은 친구 혹은 동료, 선배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연출하더군요. 그 차가 곧 성공의 비결인 것처럼 말이죠. '아직도 이 나라에선 차종만으로도 레벨이 달라지는구나.' 참 씁쓸했죠. 문득 생각났습니다. 어느 교회에 출석하던 분이 예배당에 가면 차 때문에 시험든다고 하던 말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회에도 보이지 않는 이런 '금(line)'이 존재하고 있더군요.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차를 사게 되면 '경차'를 사야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타고 다니기도 했죠. 중국에 몇 년 나가 있다가 돌아와 사정이 있어 부모님께서 20년 전에 구입하셨던 '프린스'를 빌려서 몇 달 운전한 ..

신앙 생활도 다이어트!

요즘은 카페에 자주 옵니다. 플래너를 펼치고 일정을 정리하고 그 동안 부족했던 독서량도 채워 갑니다. 그러던 오늘 문득 또 다른 생각 하나가 떠오릅니다. '신앙생활의 다이어트!' 정말이지 요즘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인간의 꺼리-놀꺼리, 볼꺼리 같은 것들-를 항시 제공함으로 인해 넘치도록 누리면서 본질적인 것에 무감감해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하나 사면 부수적인 악세사리들이 필요합니다. 핸드폰만 해도 충전기와 케이스와 보호 필름, 무선(혹은 유선)이어폰까지 갖춰야 합니다. 가방의 짐은 점점 늘고, 그 필요에 맞춰 또 다양한 물건이 개발되고 온갖 홍보를 통해 우리를 자극하여 사지 않으면 안 된다며 손짓합니다. 그래서 물건은 점점 더 작아지고 가벼워져야 하고 그럴수록 비용도 증가..

밥 한 공기 뜨는 정성으로

아침운행-저는 학원차량운행을 합니다-을 마치고 카페에 와서 '이어령 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글을 쓰고 싶어서 노트북을 켜고 블로그에 접속했습니다. 책 내용은 '서양의 빵문화와 한국의 밥문화'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글의 말미에 나온 한 줄 글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밥 한 사발은 결코 같은 밥 한 사발이 아닌 것이다. 온기가 다르고 양이 다르고 퍼 담은 솜씨가 다르다' 깊이 공감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어린이집 식당에서 아이들이 먹을 음식을 나르며 매일 그릇에 담긴 모양새를 봅니다. 밥을 분배할 때 뿐 아니라 밥을 퍼서 담는 주방장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 켠 느끼는 감정은, '밥 맛 떨어지네'입니다. 대충 퍼담은 형태입니다. 무엇보다 밥을 배분하며 모자랐는지 푹 떠서 옮기곤 그 흔적 그대로 내어놓는..

예배 이야기 2021.08.25

'하나님을 위한다'는 말의 위험성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참으로 무서운 위력을 가진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각종 말과 행동들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 하자(혹은 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지만 이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로 변해 버린 말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 하나의 전제 아래 지도자들은 여러가지 사역을 성도들을 통해 펼쳐왔습니다. 그런 수고와 노력들 덕분에 이 한국교회는 많은 성장을 가져온 부분이 분명 존재함에도, 그 현장을 겪으며 고통과 눈물 속에 오랜 세월을 살아 가야 했던 사람들이 외면 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이르러 그들은 '가나안 성도'라 불리는 사람이 되어 떠돌게 된 것입니다. '성장'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행해진 '개교회성장주의'는 진정..

예배 이야기 2021.08.16

Christian은 외계인?

눈에 띄게 하려고 작위적으로 쓴 제목은 아니지만 뜬금표 제목에 호기심과 의문을 품고 이 글을 클릭한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리스도인은 외계인이냐는 말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과 다른 딴 세계 사람이냐는 뜻입니다. 예배당에 나가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일상에서의 모습이 때로는 너무도 딴 세상 사람들 같아서요. '딴 세상'이란 단어 역시 좀 비꼬는 표현입니다. 왜 우리에게서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지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서요.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속해 사는 일반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과 관계 맺고 그분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작정했기에, 일상에서 그분의 통치(다스림) 아래 자신을 맡긴-사람입니다. 우주나 '외계'라고..

설교가 중심인 예배를 돌아보며

어제는 주일. 평소와 다름 없이 혼자 드려야 하기에 유튜브에 접속해서 실시간 예배를 방송으로 송출하는 곳을 찾아서 참석-참석이란 말을 해야 하는가 싶네요-하여 예배에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들어 계속해서 마음을 건드리는 게 있어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크게 두 가지 정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번째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수 없긴하지만) 온라인으로 예배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니면서 '지금 내가 마치 음식점에서 메뉴를 고르듯 교회를 고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번째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예배가 '설교'에 상당한 비중이 많이 실려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리 언급하자면, 이 글은 이런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쓰려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부분이 아닌가 싶어서 쓰는 글입니..

예배 이야기 2021.08.09

억울함 없는 봉사하기

에배당에 초대를 받을 때 사람들이 망설이고 거절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회 가면 온갖 일을 해야 된다'하는 말을 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배당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이 온갖 일-이걸 우린 '봉사'라고 부릅니다-들로 인해 지치고 상처받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 문득 이 '봉사'(service)에 대해 한 가지가 더 떠올라 글을 씁니다. 더 자세히 표현한다면, 봉사가 더 이상 기쁘지 않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 하고 도왔는데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싶어 마음 아프고 상처만 되는 쳇바퀴에 갇혀 버린 사람들이 기억나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예배당에서 하는 봉사의 시작과 동기가 종종 잘못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도 쉽게 '이제 교회 나온지도 되었으니 주님을 위해 일하는게 어떠냐고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