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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조각모음33

차가운 때를 이기는 동면의 시간, 기도의 때. 오늘은 왠만큼 잘 버티던 내게도 몹시 추운 날이었다. 알바하러 가는 중 마을버스가 고장 나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15분 정도의 시간이 몹시도 길게만 느껴졌다. (하필 정류장이 응달에 있어서 더욱 ) 점차로 마음 속에만 숨겨 왔던 교회에 대한 걱정들이 가시화 되어 여러 루트를 통해 들려온다. 틀을 깨야 할 때이다. 어쩌면 벌써 그렇게 마주 했어야 할 것이 아니었을까. 내부에 있으면 보이지 않을 것들이 외부의 영향으로 우리의 눈을 열고 있다. 하나의 교회인 나부터 정신차려야한다. 인생의 겨울을 만나고 나서야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며 눈물 흘리던 시간을 기억한다. 교회도 겨울을 만났다. 성전 중심으로 살던 이들이 오래 전 포로생활 중 성전을 잃고 철저히 1:1로 주님을 마주대해야 했을 그 때처럼 우리도 지금 .. 2021. 1. 8.
'평강'을 숙제로 정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갈 지 모르듯 인생 또한 그렇지만 매 순간을 잘 살면 바람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행복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다시 주어진 새로운 한 해를 열며 빌립보서 4:6-7을 읽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한다. 이어지는 내용은 '그러면 다 응답 하리라'가 아니다. 결과가 무엇이든 하나님의 평강이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라고 한다. 평강이란 무엇을 얻는 것과 상관없다는 뜻. 마음에 잘 새기고 쉽지 않지만 올해는 '아무 일에 염려하지 말고'라는 말씀에 대한 열매가 내게 있으면 좋겠다. '만물의 소리(=만음)가 들린다'고 해서 [마음]라고 한단다. 그 소음을 뚫고 주시는 말씀을 분별하기 위해 비움을 실철하는 것, 쉽지 않지만 통과해야 할 숙제임이 분명하다. 살아내.. 2021. 1. 1.
나를 사로잡은 한 마디 많이 힘이 들었을 때, 김창옥 교수의 글이나 강연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해 보려고 내 습관을 고치기 위해 루틴도 실행하고, 힘이 들어 그동안 미뤘었던 블로그 글쓰기와 운영하다가 멈추었던 포털사이트 카페를 폐쇄하고, 매일 아침 기상 후에는 마음 속에 든 무거운 것들을 비워내고자 모닝페이지를 썼다. (모닝페이지: '아티스트 웨이' 도서에 관련 내용 나옴) 그렇게 지내다가 알바를 시작하면서 한 동안 멈추었다. 마음이 좀 허전하고 외롭기도 하고 방향을 다시 잃은 것 같아서였다. 그러던 중, 김창옥 교수가 쓴 한 줄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가 행복한 방향으로 매일 1도씩 움직이세요' 짧지만 강력한 이 한마디를 인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 잡아보려고 한다. 2020. 12. 10.
나를 읽어주는 사람 미세하게 새겨진 기록들을 잘 읽어주는 레코드의 작은 바늘처럼 나를 잘 읽어주는, 혹은 가진 것을 잘 표출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은 없다. 어제 교회당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읽은 '베데스다의 38년 된 병자 이야기'에서 수많은 병자 가운데 아픔을 오랫동안 간직한 한 사람을 알아본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확 하고 들어왔다. 또 그 날은 '안식일'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키는 주일이 그런 주일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 날 점심, 혼자 조용히 밥 먹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고 후배와 식판을 들고 가서 함께 밥을 먹었다. 나의 작은 실천이었다. '그래, 주일이 이래야 맛깔나지!' 2020. 11. 23.
안식일에 대해 조명해 보다. 며칠 전, 난데없이 불쑥 찾아든 생각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들의 '쉼 없는 삶'에 대해 그리고 그로인해 '땅도 쉬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돌아보기 원하시는 것 같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끝없는 불순종과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 결국 바벨론 에 끌려가 70년 세월을 보냅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멈추고 자유가 사라졌습니다. 덕분에(?) 그들이 살고 있던 땅이 쉼을 얻게 되었죠. 실제로 하나님은 '안식'의 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며,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안식년이 7번 지난 후 다음 50년 째 되는 해)으로 이어지는 계명을 세우셨습니다. 땅도 사람도 동물도 이웃도 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내용이 떠오르기 전부터 저 스스로 던지고.. 2020. 10. 20.
언어, 통하며 살아가기 언어를 안다는 것은 삶의 지경이 넓어지고 그 속에서 관계의 지평 또한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 하던 '국경 없는 포차'를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가장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국경 없이' 지내고 있는가를 생각했고, 교회가 바로 이런 스스럼 없는 나눔이 가능한 자리여야 하지 않는가를 생각했다. 어쩌면 교회가 가진 언어가 주변인들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그 바운더리로 들어오기도 전에 '외국어'(?)에 대한 낯섬과 두려움 때문은 아닐까... 나는 하나님을 말하면서도 얼마나 다가오기 쉬운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러다보면 나의 그릇은 보잘것 없음을 느낀다. 상대를 향해 귀가 열려져서 소리가 들려야 반응할 수 있다. 듣지 못하면 말하.. 2020.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