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 사역, 봉사 47

거절하세요. 괜찮아요

함께 소속되어 일하며 서로 마음을 써주는 건 고맙고 흐뭇한 일입니다. 내가 기쁘게 마음을 열만한 무언가로 인해 베풀고 헌신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세요. 몰라준다 서운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마음을 마음으로 받지 않고 계산하고 뒤에서 험담하며 이용하려는 누군가가 존재할 때 입니다. 스트레스와 상처 받기 쉬운 상태가 되고 말거든요. 관계도 봉사도 모두 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과 정(마음)을 구별해야 하며, 이럴 때일수록 분명한 거절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해 오던 것이 있어 단호해지지 못하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거절해도 되고,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하십시오. 서로를 위해 거리를 두고 정 때문에 끌려다니지 말고 거절을 통해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헙니다. 그걸 가지고 감정적으로 나오..

내 몫을 남겨두는 지혜

책을 읽다 고로쇠나무에 대해 한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무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약 20일 정도만 자신이 지닌 수액을 내어준다고 하네요. 자기에게 남아도는 물은 내어주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남겨둔답니다. 아하! 그렇습니다. 사역도 봉사도 신앙생활도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도 깨닫고 실천해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이란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과는 다르답니다. 지금 교회 공동체와 많은 지체들이 지독한 '번-아웃'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힘들면 꼭 쉬었다 가세요

비싼 차가 신분은 아니지요

올해 초였던가요, 모 자동차 회사의 광고를 보고 기겁을 했습니다. 그 비싸고 고급스런 차를 가진 아들 혹은 친구 혹은 동료, 선배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연출하더군요. 그 차가 곧 성공의 비결인 것처럼 말이죠. '아직도 이 나라에선 차종만으로도 레벨이 달라지는구나.' 참 씁쓸했죠. 문득 생각났습니다. 어느 교회에 출석하던 분이 예배당에 가면 차 때문에 시험든다고 하던 말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교회에도 보이지 않는 이런 '금(line)'이 존재하고 있더군요. 결심했습니다. 앞으로 차를 사게 되면 '경차'를 사야겠다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타고 다니기도 했죠. 중국에 몇 년 나가 있다가 돌아와 사정이 있어 부모님께서 20년 전에 구입하셨던 '프린스'를 빌려서 몇 달 운전한 ..

신앙 생활도 다이어트!

요즘은 카페에 자주 옵니다. 플래너를 펼치고 일정을 정리하고 그 동안 부족했던 독서량도 채워 갑니다. 그러던 오늘 문득 또 다른 생각 하나가 떠오릅니다. '신앙생활의 다이어트!' 정말이지 요즘은 우리의 삶에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인간의 꺼리-놀꺼리, 볼꺼리 같은 것들-를 항시 제공함으로 인해 넘치도록 누리면서 본질적인 것에 무감감해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하나 사면 부수적인 악세사리들이 필요합니다. 핸드폰만 해도 충전기와 케이스와 보호 필름, 무선(혹은 유선)이어폰까지 갖춰야 합니다. 가방의 짐은 점점 늘고, 그 필요에 맞춰 또 다양한 물건이 개발되고 온갖 홍보를 통해 우리를 자극하여 사지 않으면 안 된다며 손짓합니다. 그래서 물건은 점점 더 작아지고 가벼워져야 하고 그럴수록 비용도 증가..

Christian은 외계인?

눈에 띄게 하려고 작위적으로 쓴 제목은 아니지만 뜬금표 제목에 호기심과 의문을 품고 이 글을 클릭한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리스도인은 외계인이냐는 말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 세상과 다른 딴 세계 사람이냐는 뜻입니다. 예배당에 나가는,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일상에서의 모습이 때로는 너무도 딴 세상 사람들 같아서요. '딴 세상'이란 단어 역시 좀 비꼬는 표현입니다. 왜 우리에게서 이런 모습들이 보이는지 생각해 봐야할 것 같아서요. 가장 먼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속해 사는 일반인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과 관계 맺고 그분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작정했기에, 일상에서 그분의 통치(다스림) 아래 자신을 맡긴-사람입니다. 우주나 '외계'라고..

억울함 없는 봉사하기

에배당에 초대를 받을 때 사람들이 망설이고 거절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회 가면 온갖 일을 해야 된다'하는 말을 합니다. 예수를 믿고 예배당에 출석하는 사람들도 이 온갖 일-이걸 우린 '봉사'라고 부릅니다-들로 인해 지치고 상처받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오늘 문득 이 '봉사'(service)에 대해 한 가지가 더 떠올라 글을 씁니다. 더 자세히 표현한다면, 봉사가 더 이상 기쁘지 않고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 하고 도왔는데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싶어 마음 아프고 상처만 되는 쳇바퀴에 갇혀 버린 사람들이 기억나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예배당에서 하는 봉사의 시작과 동기가 종종 잘못되어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너무도 쉽게 '이제 교회 나온지도 되었으니 주님을 위해 일하는게 어떠냐고 하면서..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공동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웃사라이어야 한다고 찰스 웨슬리는 말했다고 합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과연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만약 우리 의지를 동원해 그저 율법을 지키고자 결단하고 적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될 순 있어도 성경이 말하는 온전하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거듭난 사람의 본성에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급적 매일마다 노트북에 저장된 노트-저는 이것을 '모닝노트'라고 부릅니다-에 나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꾸밈없고 가감없이 모두 적어내려갑니다...

왜곡 된, '서비스'

며칠 전부터 계속 마음에 맴도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서비스'라는 개념이 무척 왜곡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고, 곧이어 '갑질'이라고 부르는 그것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었습니다. '손님은 왕이다' 어린 시절 어느 날부터 이 한 마디는 사회에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손님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냉철하게 이 말 뒤에 숨은 동기를 들여다보고 해부했습니다. 바람직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마음과 문화는 서비스를 마치 왕을 시중드는 하인처럼 '굽신거림'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하는 길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당연한 가치'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서비스..

신앙은 신념이 아닙니다.

제게는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신념을 신앙과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오늘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이 영역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을 다른 말로 예수를 '영접한다'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부터 예수를 믿겠다고 결단하는 것이죠. 나에게 삶을 주신 이 세상의 참 주인이자 창조주가 있음을 알았으니 마땅히 주인에게 권리를 양도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결단이자 헌신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의지가 동원이 되는 행위이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영접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지금부터 믿겠다'라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의 삶에서 돌이켜 새로운 주인에게 ..

'죄'라는 말이 불편하신가요?

회개가 빠진 신앙생활에 대해 돌아보는 글을 올렸으니 다음은 '죄'에 대해 말할 차례입니다. 참 불편한 단어지만 기독교 복음이 전해지던 첫 시작부터 '죄'는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그 메시지는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포였어요.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난 누구보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지킬 것 잘 지켜가며 살아왔는데 어째서 기독교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구요. 고민해 봤습니다. 어떻게하면 이 부분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죄'는 도덕적인 것에만 국한 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가장 먼저 말해야겠습니다. 그 다음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단어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헬라어로 '죄'는 [하마르티아]라고 합니다. 화살이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