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경배와 찬양'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0.05.21 성가대와 찬양단에 대한 오해
  2. 2020.04.16 예배는 '쇼'가 아닙니다

성가대와 찬양단에 대한 오해

예배사역 가이드 2020. 5. 21. 16:4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본 글은 2013년에 쓴 것으로, '성가대(찬양대)'와 '찬양팀(찬양단)'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한 번쯤 생각해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수정을 거쳐 공유하고자 글을 올립니다.

 

2018년 중국에 들어가 한인교회에서 4년을 섬기고 귀국을 해서 사역지를 정해 섬기면서 마주친 불편함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배, 특히 음악분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전히 교회 안에는 '성가대'와 '찬양단'에 대한 시선에 참 차이가 많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각 파트의 성향과 다루는 음악 패턴 등이 좀 다른 것뿐임에도 성가대에 비해 찬양팀은 속된 말로 '딴따라'처럼 여겨지는 느낌을 종종 받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클래식하고 콰이어가 있는 성가대라 해서 밴드로 구성된 찬양단보다 더 거룩하거나 그런 것이 아닌데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성속의 구분'이 보입니다. 

 

70년대부터 활동했던, 우리나라 최장수 그룹, '늘노래 선교단'의 악보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딴따라입니다.'> 이 말은 자신들을 낮추어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들을 부르더라도 '난 딴따라라도 좋다. 주님만을 노래하는 딴따라면 족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전 지금도 이분들의 찬양을 종종 다시 듣고 있고, 단장님이셨던 분과도 연결이 되어 그분의 사역을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경배와 찬양>이란 단어가 예배와 관련된 특정부분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교회음악의 한 장르가 되었는데, 이 장르의 곡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을 때 고백할 수 있는 곡들이 많아 초신자들이나 처음 교회를 방문한 사람들이 '함께 하기에는 어려운' 노래들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에 비해 예전에는 사람들을 향한 초대와 개인의 간증과도 같은 고백이 담긴 풍성한 표현과 간결한 복음이 들어간 많은 곡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노래들이 저는 그립습니다.

 

이와달리, 교회의 성가는 회중과 함께하는 것보다는 회중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에 가깝습니다. 7년간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성가는 아름답고 웅장하며 단조로우면서도 깊은 맛과 독특한 색깔을 가진 찬양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가대의 찬양이 더 특별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선 종종 성가가 더 특별한 것처럼 여겨지고 밴드로 구성된 팀은 소외되는 경우를 많이 겪었습니다. 분명 <찬양단 헌신예배>라는 제목이었음에도  성가대만 참여하고 찬양팀은 쏙 빼버리고 진행하는 일도 있더군요. 도대체 이런 구분이 어디에서 온 건지 모르겠습니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이 시작되면 이미 예배는 시작입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의 예배에는 [준비찬양]이라고 하는 것으로 선을 그어놓고 찬양시간이 마치고 나서야 사회자가 "이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멘트를 하는 곳이 아직 많습니다. 지금까지 밴드들이 모여서 섬긴 그 시간은 예배가 아니라는 인식이 들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인도자의 멘트 후에 웅장하게 시작되는 성가대의 대표 찬양이 이어져야 비로소 예배입니까? 아닙니다. 성가대는 회중을 대표해서 찬양드렸는데, 사회자의 인도하에 성가대가 수고했다고 박수까지 쳐줍니다. 찬양단이 이끌었던 시간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예배와 수고와 격려하는 것을 구분했으면 좋겠습니다. '찬양'과 '예배'라는 순전한 뜻에서 보면 차라리 찬양단의 리드가 더 예배의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그들과 회중은 함께 어울려 하나님을 높였으니까요. 그러고도 말없이 뒤처리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성가대이면 어떻고 밴드로 구성된 찬양단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쁨으로 섬기려고 헌신한 자리에서 수고한 것에 대해 행복함이 열매로 맺어질 수 있도록 우리도 응원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게 판단하고 구분하는 태도를 가지고 그들을 대했다면 용서를 구하십시오. 모두 귀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어느쪽에서 섬기시는 분이든 '교회음악'분야에서 섬기는 분들은 항상 회중이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도록 선곡도 신중하게 해 주시고, 회중이 낯선 음악이나 분위기 때문에 예배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잘 관찰하고 피드백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쪽이든 공연 같아지면 안 됩니다. 기본을 잘 지켜내야 합니다. 

 

가끔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서 듣게 되는 조언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최선의 것을 위해 조금의 손해가 있더라도 초심을 잃지않고 기본에 충실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소문 듣고 몰려들고 매출이 올라도 돌려보낼 줄도 알아야 하고, 자신의 분수나 능력에 맞게 가감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역에도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에 '부흥'이란 의미가 곡해되어 '숫자가 늘어나는 것'에 비중이 커지면서 사람을 끌기 위한 잘못된 시도를 하는 인도자와 팀을 많이 봤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는 우리들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사역 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To Worship Alone (혼자만의 예배)  (0) 2020.05.22
성가대와 찬양단에 대한 오해  (0) 2020.05.21
악보와 친해지세요  (0) 2020.05.18
이미지 트레이닝 훈련  (0) 2020.05.07
Don't Overplay!  (0) 2020.04.30
예배를 위한 콘티 작성 가이드  (0) 2020.04.29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예배는 '쇼'가 아닙니다

예배사역 가이드 2020. 4. 16. 14:17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2016년 3월 28일, 네이버 뉴스 <종교 섹션>에 올라온 <무대 집회로 바뀐 예배, 하나님과의 교제 막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 세미나에서 한일장신대 정장복 교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대 감각만 남고 성스러움이 결여된 예배당, 회와 구분되지 않는 예배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이 됩니다. 규장에서 발간된 W.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2008년~2009년 그 어디쯤에 후배들과 여러 교회들과 연결되어 찬양집회 인도를 다니면서 종종 예배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몇몇 단체 혹은 사람들이 집회 혹은 예배를 이끌면서 보이는 태도에 대해 '경배와 찬양'이 아닌 '경배와 쇼'라는 조롱 섞인 말을 한 적도 있었지요. 

 

[경배와 찬양]이란 용어가 전국으로 번져 나가면서 회중찬양을 비롯하여 교회의 예배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획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덕분에 악기를 파는 상인들도 한몫 단단히 챙겼지요. 미처 음악과 관련된 전문 사역자들이 준비과정을 거쳐 세워지기도 전에 삽시간에 예배의 형식을 바꾸었고, 지금도 그 영향으로 정해진 예배 시간 전부터 '준비찬양'이란 용어도 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강대상(설교단)의 높이도 점차 낮아졌고  설교자의 강단의 크기도 보면대처럼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강단은 무대처럼 조명도 화려하게 바뀌었고, 온갖 컨트롤러가 방송실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세상은 점차로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영상과 미디어 장비를 도입하여 현재 위성 중계 및 전문 기독교방송을 통해 다양한 채널 선택을 통해 어느 곳에서나 영상을 통한 예배를 할 수 있는 데까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는 동안 전통예배와 찬송가와 예식 등이 가진 좋은 것들도 희석되고 우리들도 모르게 회중이 구성원과 연령에 따른 갭 또한 커져 버렸습니다. 물론 걱정하는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리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회중들이 좋아하고 그런 형식의 예배에 손을 들어주었으니까요. 제가 이런 우려를 했을 때 같은 고민을 주제로 책을 쓴 분이 있더군요. 바로 퀸틴 슐츠입니다. 2007년 IVP에서 발간 된  그의 책 <하이테크 예배>에서는 '기술 활용에 필요한 원리와 예배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빠른 혁신만을 추구하고 있어 기술이 예배의 독소가 될 때가 많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의 말과 같이 현대의 예배당 방송실 안에서 매일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배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지금 곡의 어떤 부분을 부르는지 PPT 가사를 자주 놓침으로 스크린의 자막이 길을 잃듯 헤매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합니다. 자막에 의존하는 것에 익숙한 회중은 가사가 보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맙니다. 설교자나 인도자가 요구하는 순서에 맞춰 필요한 자료를 송출하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틈틈이 애를 쓰지만 펑크 나는 것은 이제 문제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동안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청중이 감당할 몫이지요. 

 

교회의 담임목회자뿐 아니라 예배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가지는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예배가 예배될 수 있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010년 쯤, 중국에 있다가 잠시 나와서 재정비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축복하며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공동체 예배 시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늘 그렇듯 그 교회의 공동체는 어디 있던지 활력이 넘치고 긍정적인 분위기,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해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다만, 어색했던 한 가지는, 무대 뒤편에서 호명될 차례를 기다리며 있을 때 PD로 보이는 분이 스텝들과 소통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본당에서와 달리 그 뒤편의 풍경은 예배가 아니라 <방송국> 같았습니다. 전문사역자가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참석할 예배를 주관하는 예배당 한 구석에서 이제는 익숙하게 보게 될 모습일 수 있어서입니다. 기우인지 모르나, 전 그런 모습 속에서 '좋다' '대단하고, 훌륭하다'라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납니다. 인도자의 책임이 너무도 큽니다.

 

좋은 집회나 예배가 잘 준비되고 편리하고 최신식 환경을 갖춘 곳에서 하이테크 기술이 접목되어 이뤄지는 것은 참 좋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예배의 본질을 놓치게 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음을 예의주시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다가 제가 사역지를 구하면서 겪은 불쾌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예배시간에 찬양 인도할 사람을 구한다 하기에 서류를 갖춰 지원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앞에 서는 인도자는 젊은 사람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기가 막혀 멍하니 있다가 이내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쇼를 원하시는지요? 그런 곳이라면 저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까칠한 내용이지만 지금도 동일한 물음표를 던질 것 같습니다. 테크닉도 필요한 것은 분명 하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역자들이 되어 예배가 쇼 show가 되지 않게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