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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5.12 포스트 코로나, 교회는 어떨까?
  2. 2020.05.08 '홀로 됨'의 영성, '어울림'의 영성

포스트 코로나, 교회는 어떨까?

생각의 조각모음 2020. 5. 12. 22:5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코로나 사태 이후 과연 어떤 변화가 불어닥칠까?

코로나 사태가 여러 달 계속되고, 이태원 클럽과 관련된 확진자로 인해 또다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SNS 한 켠에서는 코로나 사태 이후에 교회가 맞이할 상황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었다. 외부에 있어서 잠시만 들은 것이지만 생각보다 긴장감이 깊고 고민도 짙음을 느꼈다. 

 

2013년도에 발간된 최윤식 박사의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라는 책에서 보면 미래 사회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담았었다. 그중 하나가, 가상의 세계에 몰두하는 사람들과 '죽음'에 대한 개념의 변화에 대해서였다. 그 제목 그대로 옮기자면 "가상공간에서 영생을"이라고 되어 있다.

 

조금 전 잠시 시청한 영상을 보니,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온라인 예배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는데, 교인들 중에는 '필요한 부분만 압축된 정도의 분량으로, 어쩌면 설교 부분만 본다거나, 그런 식으로 상황을 보고는 "나, 예배드렸다."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다. 반면, 개인적인 삶에도 더 관심을 가지게 되어 '개인 영성'을 훈련하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늘 걱정하던 것이, 교회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좀전에 말한 SNS에서와 같이 상황을 주시하고 사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해법을 찾고자 하는 분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전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무사안일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교회도 적지 않다고 본다. 사회문화적 흐름을 따라 콘텐츠를 짜고 만드는 것은 나 역시 찬성한다. 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상황에 대응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틀린 것일까? 교회의 문화나 흐름을 이끄는 공동체의 시스템을 멀찍이서 보면, 멀티미디어의 번영시대에 맞춰 대응하다 보니 방송국 시스템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앞으로도 유효할까라는 관점에서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 가지는 정체성을 이 시대속에서도 잃지 않아야 하고, 동시에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과 '제자도'를 따라 살아내는 것이 미래에 어떤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지 연구해야 할 과제가 점점 절실해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너무 부정적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내가 접하는 세계가 좁기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교육에 있어 사역자들 중에는 컨텐츠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보이기도 한다. 지금은 함께 할 놀이 콘텐츠나 교육을 위한 다양한 교육 방법론과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게 본질은 아니라는 것 아닐까? 복음이라는 것을 담기 위해,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고 일상에서 관계를 누리는 그것을 위한 어떤 도구를 써야 하는지는 개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주객이 전도되어 본질은 사라지고 콘텐츠만 남아선 안된다는 말이다. 

 

'유발하라리'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무섭다. 그가 예상하는 미래사회를 책을 통해 엿본다면 기독교가 상당히 긴장해야 할 이야기가 나온다. 상상을 뛰어넘는 그런 세계와 인간의 가치관 변화의 쓰나미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 이 사태를 지나면서 사람이 줄어드는 것보다 더 큰 것이 뒤에 따라올 수도 있다. 실천신학자들이 고민하듯, 공동체 개념이 변하고, 종교가 더 필요할까 하는 의식변화에 어떻게 대응할까 하는 등의 난제들이 하나 둘 밀려오는 중이다. 쉽지 않지만 이미 주어진 숙제이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교육의 변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번에 쓴 글 중 하나에도 이미 언급했지만, 한국교회들이 각자 플레이를 많이 했다. 그로 인해 신앙의 전통과 성서의 해석과 삶의 여러 문제에 대한 해법에 있어서도 기준이 상호 간 차이가 많은 경우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교단을 넘어, 지도자들이 연합하여 올바른 방향을 가진 통일된 교육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먼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선 그곳에 임하시는 그 분의 통치하심이 변함없고 역사하신다는 그 고백적 토대를 어떻게 성도들에게 현실화시켜 체험케 할 것인가?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백성에게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할 때 두려움 때문에 '우리 대신 당신이 가소서'라고 하듯이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의존하거나, 신앙은 성직자들이 중간에서 잘 중재하는 것이란 생각에 수동적 태도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여전히 멀리 서게 하면 안 될 것이다. 

 

두서가 없었지만, 오늘 하루 일 가운데 문득 내 관심을 끈 주제라 생각이 이끄는대로 적어본다. 지금은 여건이 안 되어 사역지에서 잠시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교회는 내 고민이자 사랑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 시기를 어떻게 맞이할지 또 한 가지 숙제를 얻어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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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됨'의 영성, '어울림'의 영성

교회사역 제안서 2020. 5. 8. 14:2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부모와 마을과 교회가 함께 다음세대를 세운다면 좋겠습니다.

어제(5월 7일) 밤 ZOOM을 통해 <한국기독교협회 콜로키움>에 참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학원 때 기독교교육학 전공을 담당하셨던 교수님께서 페북에서 공지해 주신 덕분입니다. 마지막 학기가 끝나기 전 '교회와 가정과 마을이 함께 하는 교육'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도 이번에 그것을 주제로 논문을 쓰시고 발표를 하셨습니다. 

 

자료와 발표를 듣다가 <홀로 됨의 영성>, <어울림의 영성>이란 단어가 떠올라 메모지에 얼른 적었습니다. 교육에 있어 전문 기관은 많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교육기관에 위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되었고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맡기면 신앙도 커지고 믿음 생활 잘할 거라는 무의식적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내는 것도 같은 마음일 겁니다. 시간이 지나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오면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으로 또 다른 밭으로 자녀를 옮겨 심는 일로 이어지겠죠. 

 

바로 이 부분에서 사람들이 실수를 하곤 합니다. 정해진 몇 번의 시간으로는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예배당에도 1주에 한 번, 그것도 단 몇 시간만 왔다갔다 하는 것으로는 절대 열매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니까 헌금도 하고, 후원금도 주고,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좋은 사역자 구하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들 내면의 숨겨진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 대해 뿌리부터 잘못되어 있다고 말이죠.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과 돌봄과 교육이 우선이고, 공부나 자녀의 재능 개발 같은 것에는 도와 줄 사람들이 필요하니 그다음 순서에 해당합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공동체'의 개념이 많이 약화된 관계로 <마을>이란 것의 의미 역시 과거와 달리 퇴색했는데 이것을 되살려야 합니다.

 

예전엔 동네에서 서로의 사정을 알고 공유할 환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과 각자의 공간'에 대해 중요시하게 되어 바로 옆 건물, 아파트 옆 집에 누가 사는지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단절이 되어 고독사와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교육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예전에는 (올바른 의미에서의) '어르신'들이 마을에 있어 서로 간 예의를 가르치고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하면 '왜 우리 애한테 그러냐'라고 한 소리 듣기 쉬운 행동이 되어 버렸지요. 

 

이 모든 것을 관찰해 보니 우리가 다시 회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길이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부모의 보호 아래 마을과 교회가 함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돌보는 교육이 시행되어야 하는 것, 그것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배당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거기 출석하기 전부터 이미 누군가의 가족이며, 어느 마을/동네의 공동체의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들의 살아온 토대를 이해할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교회가 어떤 곳이며 무슨 일 하는지 관심을 갖고 소통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대화할 '언어'가 생겨납니다. 

 

교회를 처음 갔다가 생각하고 예배를 참석할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성경 속 인물의 이름과, 교회 용어들은 낯설게 느껴집니다. 은사로서의 '방언'이 아니라도 교회의 이런 모습은 마을 속에서 '방언'과 같이 동떨어지고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한발 먼저 오픈하고 나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해야 가까워집니다. 예수님은 기다리지 않고서 다가가셨습니다. 교회는 그래야 합니다.

 

반대로, 마을도 그래야 합니다. 자기 자녀들이 학교에서 무얼 배우는지에는 눈을 부릅뜨고 살피지 않습니까? '치맛바람'이란 그런 열정에서 나온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가족 중 누군가 예배당에 간다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데 너무도 무심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니 설마 잘못 가르칠까'하는 마음처럼 관심을 놓으면 안 됩니다. 교회가 어떤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지 판단하고 잘못하는 것은 이야기하고 권면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다리를 놓아 소통하면서 자녀와 후손들의 미래, 마을 전체의 발전된 모습을 위해 어떻게 상생하며 살아야 할 지 나눌 수 있는 방법을 늦지 않게 찾고 회복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기억 속에서 '옛날에는 기독교가 많은 것을 주도하여 발전에 이바지했는데...' 하면서 추억에 남겨져 있으면 안 됩니다. 잃어버린 그것을 찾아야 할 책임이 우리 세대에 남겨진 임무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상상력을 동원해 따라가보면, <홀로 있을 때>와 <어울릴 때>가 잘 조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따르는 공동체로서 독자적인 색깔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예배당이 속한 지역사회와 어울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문턱을 낮추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생기는 열매가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의 문을 열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사건과 이슈가 될만한 것들을 볼 줄 알고 반응하는 삶 또한 살아야 합니다. 상생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그 일을 이루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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