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3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공동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림과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웃사라이어야 한다고 찰스 웨슬리는 말했다고 합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과연 정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만약 우리 의지를 동원해 그저 율법을 지키고자 결단하고 적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될 순 있어도 성경이 말하는 온전하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거듭난 사람의 본성에 주어지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급적 매일마다 노트북에 저장된 노트-저는 이것을 '모닝노트'라고 부릅니다-에 나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꾸밈없고 가감없이 모두 적어내려갑니다...

7년 전 오늘(4/16)을 기억하며

7년 전 오늘. 동료와 이른 점심 중 TV 에서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이어지는 아나운서의 멘트-'모두 구조 되었습니다'-를 듣고 '다행이네'라며 다시 밥을 먹으며 식탁교제를 이어갔다. 그런데...그 모든 것이 거짓방송이었다.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고, 그 날 이야기가 나올 때 마다 주변 사람들은 '이제 좀 그만하지'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지금도 깊이 애도하는 사람들만큼 나는 여전한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는걸까? '네 이웃은 누구냐? 그들을 향한 네 시선은 어떠냐?' 는 질문이 마음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 속에 숨어 있는, 피할 수 없는 시선 앞에 움찔하고 말았다. - 가방에 달린 이 작은 표식이, 오늘 내 주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를 헤아려 보며 -

생각의 조각들 2021.04.16

서로 간 거리를 좁히는 방법

책을 보다 문득 '이방인' '이주민'이란 단어가 떠 올랐다. 곧이어 예수님이 떠올랐다. 본래의 자리를 떠나 인간세상으로 이주해 오신 분. 온갖 쑥덕거림을 경험해야 했던 분. 본래 그 땅에 살던 이들은 '기적'이나 '놀라운 말씀'에는 관심을 가졌으나 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외면과 무시를 당하던 이들이 그를 알아보고 환영하고 따랐다. 아이러니. 서로 간 거리를 좁히는 방법은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함과 동시에 사실은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그때에야 비로소 '이웃사랑'의 시작이 되는 것이리라.

생각의 조각들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