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지원, 꼭 [계획서]를 내야 하나?

교회사역 제안서 2020. 4. 25. 14:40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사역을 하려면 꼭 거치는 관문, '사역 지원'에 대해, 특히 <사역 계획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자 글을 쓰려고 합니다. 아무도 이 부분에 대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제가 한 번 제안해 봅니다. 사역자를 찾는 교회의 입장에서나, 지원하는 사역자 입장에서나 각자가 가진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한 번 고려해 봤으면 합니다. 

 

통상적으로 교회에서는 부교역자에게 '교육부서'를 다른 업무와 병행해서 맡기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서로가 초면인데, 무엇보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그 교회가 어떤 필드 인지도 모르는데 <1년 교육계획>을 짜서 제출하라는 것이 이치에 맞는 걸까요? 

 

교육부서는 부교역자에게 일임하고 터치 안 할 테니 마음대로 해 보라는 의지요 약속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교회든지 '비전'이나 '사명선언문' 또는 '목회 방침'이 있지 않나요? 그런데 그것과 별개로 부교역자에게, 그것도 그 교회에 대해선 무지한 상태에서 계획을 짜라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을 원하는 이유 하나쯤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지원하는 사역자가 어떤 교육방침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의도 아닐까요? 하지만 그걸 그대로 적용하는 건 위험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도시계획을 세우듯 터를 닦고 하나씩 길을 내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정체불명의 어떤 건물을 세우도록 쉽게 허가를 내주는 그런 일은 지양해야 합니다. 차라리 [모집공고]를 낼 때, 우리 교회 비전은 이러저러 하니 지원자는 이를 토대로 하여 계획을 세우고 제출하라고 명시해 두는 것이 맞지 않나요?

 

또 다른 이유는 아마 '사역의 다양성' 을 고려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다방면의 멀티플레이어는 될 수 없습니다. 각자의 능력과 그것이 실현 가능한 환경이 다르니까요. 따라서, 원하는 그 목표에 맞는 사람을 찾으려고 우선 계획서를 통해서 파악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런 방법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 경우에도 <계획서>를 요청하는 이유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지원자가 합격하더라도 최소 한 달 이상은 담임목회자와 교회학교 교사들이 모여 함께 점검하고 의논을 하고, 아이들의 그 동안의 교육에 대한 피드백도 설문 등을 통해 충분히 받아서 총체적인 그림을 교회가 함께 그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교회도 이것을 한 번 고려하고 반영하고 실험을 해 보시길 권면해 봅니다. 

 

지난 4월 23일(목) KBS 2방송 '다큐 인사이드' 프로그램에서는 [ TEN: 미래교육의 10가지 단서]란 제목으로 교육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보는 내용이 방영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보며 무릎을 쳤습니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그려온 '교회학교의 예배와 공과공부 혹은 설교시간의 바람직한 풍경'이 그 학교들에서 실현이 되고 있었습니다. 한국 교육의 방식은 그동안 '일방적'이고 '수직적', 수용적, '수동적인' 것이었습니다. 예배당 풍경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과 청년들의 몸짓은 반응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질문 하나 하기에도 눈치가 보이는, 원래 질문하고 답하고 함께 씨름하며 답을 찾아야 하는데 정작 그 교육의 대상이요 주인공이 되는 '유치/유년부로부터 청년부에 이르는' 구성원들은 소통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이젠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된 사람들도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 중에는 '일방적 강요'에 대한 것이 많습니다. '무조건 믿으라'라고 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고 하네요. 한 때는 이 땅의 계몽에도 힘썼던 교회가 이젠 그 자리를 잃고 울타리 안에만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기독교 교육의 현장이 되는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지도자'의 중요성인데, 그들을 구하는 시기에 지도자와 학생들이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누고 방향을 같이 고민하는 일도 없이 <사역 계획서> 한 장에 모든 것을 판단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요, 말도 안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글이 구인/구직에 있어 작은 등대였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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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주자가 빠지기 쉬운 '선입견'이란 함정

예배사역 가이드 2020. 4. 22. 16:16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이번 글은 반주자들이 꼭 알아야 하는, '연주자들의 선입견'에 대한 주제로 쓰려고 합니다. 연주자들에게는 반주 잘하는 팁을 알려주는 게 맞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테크닉을 이야기하기 전에 언급해 주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서 글의 우선순위를 양보했습니다. 

 

어떤 곡이든 '원본'이 되는 '원곡'이 존재합니다. 임의로 한 곡을 고르겠습니다.. "주의 이름 높이며' (Lord, I lift your name on high), 이 곡은 웬만하면 다 아는 곡입니다. 혹시 이 곡의 첫 버전은 언제 나왔고 누가 어떤 장르나 리듬 등으로 불렀는지 아시나요? 제 기억으론 1972년에 등장한(?) Petra라는 그룹밴드의 1997년 앨범에 등장한 걸로 생각됩니다. 그 이후 많이 편곡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 서로가 알고 있는 버전이 동일하진 않겠죠? 이처럼, 서로 간의 차이 때문에 인도자는 연습 전에 이러저러하게 연주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 순간에 반주자들이 종종 실수합니다. 끝까지 들어봐야 곡의 흐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곡의 한 지점에서 '바로 여기를 카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것을 악보에 체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주자들은 몇 초도 안 듣고서는 다 이해했다는 듯이 바로 자기 자리로 가서 연주를 따라치더군요. 물론 기초도 실력도 든든한 사람이라면 그 정도야 거뜬하겠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인도자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이봐, 그거 아니야. 아니라고!' 하며 제지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교만 섞인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반주자에게도 '경청'이 우선입니다. 연주회나 독주가 아닌 이상 인도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잘 듣고나서 '이제 연습해 봅시다'라는 신호에 따라 하나씩 수정/보완해 나가는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이런 태도에 무신경하거나 익숙해져서 문제로 보지 않을 수 있지만, 이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도 있습니다. 내가 한 번 놓친 '주의사항' 때문에, 팀 전원이 연습하던 흐름을 멈추고 쉬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런 연주자는 인도자에게 끔찍한 존재들입니다. 실컷 연습하고 나서도 실전에는 자기 맘대로 연주하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이미 시작한 예배에서 화 낼 수도 없고, 그냥 두자니 맘에서는 짜증이 올라오고,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알았다'라고 분명히 신호해 놓고 꼭 그 부분을 놓치고 마는 연주자가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틀린 것을 깨닫고 손을 떼고는 멍해진 반주자도 본 적 있습니다. 그 당혹감이란 ㅜㅜ

 

그래서 제안합니다. 잘 듣는 훈련을 하세요. 원곡도 들어보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다양한 버전을 모아서 함께 모여서 곡에 대한 의견과 느낌을 피드백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그대로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절대 같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잘 듣고 악보에도 확실하게 체크하고 파트별로 자기가 맡은 연주 부분을 확실히 연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팀 만의 연주 스타일을 함께 다시 만들어 가는 것이 성장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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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쇼'가 아닙니다

예배사역 가이드 2020. 4. 16. 14:17 Posted by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음악노트

2016년 3월 28일, 네이버 뉴스 <종교 섹션>에 올라온 <무대 집회로 바뀐 예배, 하나님과의 교제 막아>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 세미나에서 한일장신대 정장복 교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무대 감각만 남고 성스러움이 결여된 예배당, 회와 구분되지 않는 예배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다' 참으로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이 됩니다. 규장에서 발간된 W.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2008년~2009년 그 어디쯤에 후배들과 여러 교회들과 연결되어 찬양집회 인도를 다니면서 종종 예배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그때 몇몇 단체 혹은 사람들이 집회 혹은 예배를 이끌면서 보이는 태도에 대해 '경배와 찬양'이 아닌 '경배와 쇼'라는 조롱 섞인 말을 한 적도 있었지요. 

 

[경배와 찬양]이란 용어가 전국으로 번져 나가면서 회중찬양을 비롯하여 교회의 예배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획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덕분에 악기를 파는 상인들도 한몫 단단히 챙겼지요. 미처 음악과 관련된 전문 사역자들이 준비과정을 거쳐 세워지기도 전에 삽시간에 예배의 형식을 바꾸었고, 지금도 그 영향으로 정해진 예배 시간 전부터 '준비찬양'이란 용어도 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강대상(설교단)의 높이도 점차 낮아졌고  설교자의 강단의 크기도 보면대처럼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강단은 무대처럼 조명도 화려하게 바뀌었고, 온갖 컨트롤러가 방송실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세상은 점차로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영상과 미디어 장비를 도입하여 현재 위성 중계 및 전문 기독교방송을 통해 다양한 채널 선택을 통해 어느 곳에서나 영상을 통한 예배를 할 수 있는 데까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는 동안 전통예배와 찬송가와 예식 등이 가진 좋은 것들도 희석되고 우리들도 모르게 회중이 구성원과 연령에 따른 갭 또한 커져 버렸습니다. 물론 걱정하는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리 염두에 두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회중들이 좋아하고 그런 형식의 예배에 손을 들어주었으니까요. 제가 이런 우려를 했을 때 같은 고민을 주제로 책을 쓴 분이 있더군요. 바로 퀸틴 슐츠입니다. 2007년 IVP에서 발간 된  그의 책 <하이테크 예배>에서는 '기술 활용에 필요한 원리와 예배의 본질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빠른 혁신만을 추구하고 있어 기술이 예배의 독소가 될 때가 많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의 말과 같이 현대의 예배당 방송실 안에서 매일 이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배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사람들이, 지금 곡의 어떤 부분을 부르는지 PPT 가사를 자주 놓침으로 스크린의 자막이 길을 잃듯 헤매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합니다. 자막에 의존하는 것에 익숙한 회중은 가사가 보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다 멈추고 맙니다. 설교자나 인도자가 요구하는 순서에 맞춰 필요한 자료를 송출하는 일도 만만치 않아서 틈틈이 애를 쓰지만 펑크 나는 것은 이제 문제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동안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은 청중이 감당할 몫이지요. 

 

교회의 담임목회자뿐 아니라 예배를 섬기는 사역자들이 가지는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예배가 예배될 수 있도록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2010년 쯤, 중국에 있다가 잠시 나와서 재정비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축복하며 기도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공동체 예배 시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늘 그렇듯 그 교회의 공동체는 어디 있던지 활력이 넘치고 긍정적인 분위기, 성령의 임재하심에 대해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다만, 어색했던 한 가지는, 무대 뒤편에서 호명될 차례를 기다리며 있을 때 PD로 보이는 분이 스텝들과 소통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본당에서와 달리 그 뒤편의 풍경은 예배가 아니라 <방송국> 같았습니다. 전문사역자가 철저한 준비를 하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우리가 참석할 예배를 주관하는 예배당 한 구석에서 이제는 익숙하게 보게 될 모습일 수 있어서입니다. 기우인지 모르나, 전 그런 모습 속에서 '좋다' '대단하고, 훌륭하다'라는 생각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기억이 납니다. 인도자의 책임이 너무도 큽니다.

 

좋은 집회나 예배가 잘 준비되고 편리하고 최신식 환경을 갖춘 곳에서 하이테크 기술이 접목되어 이뤄지는 것은 참 좋은 현상이기도 하지만 예배의 본질을 놓치게 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음을 예의주시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다가 제가 사역지를 구하면서 겪은 불쾌한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예배시간에 찬양 인도할 사람을 구한다 하기에 서류를 갖춰 지원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답을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앞에 서는 인도자는 젊은 사람이 나을 것 같습니다.' 기가 막혀 멍하니 있다가 이내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교회에서는 쇼를 원하시는지요? 그런 곳이라면 저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까칠한 내용이지만 지금도 동일한 물음표를 던질 것 같습니다. 테크닉도 필요한 것은 분명 하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역자들이 되어 예배가 쇼 show가 되지 않게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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